• 지난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파기환송 했어요. • 이를 두고 “대법원이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죠. • 재판이 유례없이 빠르게 이뤄진 데다 기존 2심 무죄 판결을 뒤집는 결과였기 때문이에요. •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수 증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파기환송 사건이 왜 대법관 수 증원으로 이어지는지, 어떤 논쟁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논쟁① 대법관 늘리면 신속 재판 가능해질까?
찬성 측은대법관 수가 적어서 대법원의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해요. 현재 우리나라 대법관 수는 14명입니다. 대법관 1인당 연 5000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죠. 2022년 기준 대법원에 접수된 본안 사건(사안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만 5만6000건 이상이었다고 해요. 사건은 많은데 인력은 부족하다 보니 대법원의 재판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3년 민사 본안 사건(사안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 중 대법원이 재판 청구 절차조차 밟지 않은 ‘미제 사건’만 1만828건에 달했어요.
그런데 5월 1일 있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은 9일 만에 초고속으로 이뤄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무죄 판결을 뒤집어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초스피드 재판”이라고 비판하며 “(특정 사건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예외 없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면서 대법관 증원 카드를 꺼내든 것이고요. 법원 내부에서도 오래 전부터 대법관 증원 필요성에 공감했어요. 2022년 전국 법관 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69%가 대법관 증원에 찬성했거든요. 대법원 사건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처리를 할 수 있다는 이유였죠.
반대 측은대법관 증원이 국민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5월 14일 국회 질의에 참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원 수만 증원한다면 오히려 모든 사건이 ‘상고화’돼 재판 확정이 더더욱 늦어질 것이다.”
2025.05.14.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일부 판사들도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고 있어요. 재판 인력 상당수가 대법원으로 가면 1∙2심 재판 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3심 재판의 신속성을 제고하더라도, 정작 하급심에서 또 재판이 늦어질 수 있죠. 한편에서는 “대법관 증원은 필요하지만 전문성 강화 목적이 아니라 법원 공격 목적으로 보인다”는 반감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대법관이 늘어나면 대법원 판사 전체가 참여해서 사건을 심리하는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 시간적, 절차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에요. 전원합의체 개최가 드물어지고 대법원 내 소부(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작은 합의체)에서 개별적 판단을 하게 되면 판결 간 해석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법원이 갖는 ‘법령 해석의 통일성’이 약해질 수 있죠. 법조계는 이러한 기능 약화가 법 적용의 혼선을 부를 수 있다고 보고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3심 판결 이후 대법원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출처: 셔터스톡
논쟁② 대법관 늘리면 심층적 심리 가능할까?
찬성 측은대법관 수가 부족한 지금은 사건의 심층적 심리와 숙의라 어렵다고 비판해요. 실제로 대법원에 계류된 사건 중 70%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되고 있어요. 더 이상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원심의 판결을 확정한다는 뜻이에요. 이 경우 판결문에 ‘왜 상고심을 기각하는지’ 구체적인 이유가 없는 탓에 소송 당사자의 불만이 끊이지 않아요. 상고심 재판을 향한 국민적 불신이 높을 수밖에 없죠.
해외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 답답해요. 독일은 연방법관 수가 320명입니다. 프랑스는 최고 법원인 파기원 판사만 120명 이상이에요. 이들 국가는 대규모 인력을 바탕으로 법률 분야별로 법관을 나눠 각자 분야에 맞는 사건을 심리하고 있어요. 법관이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한 취지죠. 그래서 한국도 대법관을 늘려서 개별 사건에 충분한 시간과 역량을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 프랑스 파기원의 신뢰성·투명성 제고 노력
✦ 2021년부터 판결문 오픈 데이터 공개 프로젝트 추진
✦ 2025년 5월 판결 이유 설명 강화, 소수 의견 도입 가능성에 관한 보고서 공개
프랑스의 최고 재판기관 중 하나인 파기원은 사법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출처: ekie
반대 측은대법관 수를 늘리면 오히려 법원의 권리 구제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고 말해요. 앞서 언급했듯, 전원합의체 기능이 사실상 마비돼 버리기 때문에 충실한 심리가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에요.
또한, 기존에는 하급심이 대법원의 법 해석을 따르는 경향이 컸는데, 대법관을 증원하면 대법원의 ‘판례 지도 기능’이 약해질 것이란 관측도 있어요. 대법관 증원 여파로 전원합의체가 어려워지면 소부별 법령 해석이 다원화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유사한 사건을 두고 상충하는 판례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결국 판결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일반 국민이 소송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주장입니다.
논쟁③ 대법관 늘리면 정치적 중립성 강화될까?
찬성 측은대법관 수를 늘리면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성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해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대법관 후보군은 고위 법관 중심으로 제한돼 있었어요. ‘서울대∙50대∙남성’이란 키워드에 갇혀 있기도 했고요. 아래의 이미지들은 각각 다른 연도에 보도된 뉴스 기사예요. 우리나라 대법원의 인력 구성 범위가 얼마나 협소한지 느껴지시나요?
윗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2014년, 2015년, 2020년, 2024년 언론 보도 기사.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순혈주의,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요. 지금의 인력 구조는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할 수 없어 약자와 소수자 보호라는 대법원의 사명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대법관 증원에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법원이 다양한 계층의 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특정 이해집단이나 정치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요.
반대 측의시각은 전혀 다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법관 정원 확대가 대통령 및 국회 다수당의 영향력 강화와 직결된다고 봐요. 대법원장은 후보추천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대법관 후보자를 선정해서 대통령에게 제청합니다. 대통령은 후보 중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인물을 대법관으로 임명하고요. 그 다음 국회 동의를 거치면 임명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 가장 강한 실권을 쥐고 있는 쪽이 바로 대통령과 국회입니다. 대법관을 14명에서 20명으로 늘린다고 가정해볼게요. 기존 대법관을 제외한 6명을 그 시점의 대통령 국회 다수당이 새로 임명할 수 있죠. 이 과정에서 정권의 코드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혀 사법부를 장악할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법조계가 “대법관 증원이 법원 조직 개편이 정치 전략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오히려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강변하는 거예요.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코트 패킹(Court Packing)' 논란
✦ 1930년대 대공황 해결책으로 뉴딜 정책 추진한 루스벨트 대통령
✦ 보수 성향 연방대법원 뉴딜 법안 상당수 '위헌' 판결
✦ 1937년 대법관 증원 담은 연방 대법원 개혁안 마련 ✦ 삼권분립 침해, 정치적 목적의 사법 장악, 헌법 정신 훼손 등의 비판 ✦ 결국 대법원 개혁안은 의회에서 부결
✦ 법원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합리적인 재판을 해야 해요. 특권층에 편향적인 판결을 내리기보다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힘써야 하고요.
✦ 대법관 증원은 이러한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증원은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한 대법원을 구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 법원은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대법관 증원이 ‘국민의 법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라요.
오늘의 플로우는 여기까지🎤
오늘은 정국의 핫이슈로 떠오른 대법관 증원 논쟁을 정리해봤어요. 대법관 숫자를 둘러싼 공방전, 어떤 의견들이 있었는지 조금은 감이 잡히시나요? 모든 제도와 정책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 있으니 어느 한 쪽에 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플로우체크를 통해 대법관 증원의 장점과 우려점을 고루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 만나요💌
한겨레. 25–05.15. [두 번째로 높았던 ‘법원 신뢰도’ 6개월 새 밑에서 두 번째로 추락]. 조선일보. 25–05.14. [법원행정처장 “대법관 증원, 재판 더 늦어져 국민에 불이익”]. 연합뉴스. 25-05-14. ['대법관 증원·재판 헌법소원' 사법부 향한 법개정… 숨죽인 법원]. 경향신문. 25-05-05. [‘세계 최초 4심제’ 국힘 비판 사실일까?··· 대법관 증원은 법관들도 ‘찬성’]. 뉴스1. 24-09-25. [민사 합의부 사건 처리 속도, 1심만 1년3개월… 전년보다 53일 늘어]. 연합뉴스. 23-10-08. ["구체적 이유 뭔가요" 대법원 간 사건 70%는 심리불속행 기각]. 프랑스 파기원. 25-05-02. [Motivation enrichie et opinion séparée : la Cour rend public son rapport].